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천수이볜 암살 미수 사건 (문단 편집) == 대만 선거 소요 == 결국 이 사건은 11대 총통 선거가 무효라고 주장하는 대형 소요로 발전했다. 3월 29일 국민당, 친민당으로 구성된 야당 연합은 총통 당선무효 소송을 냈고 4월 2일 대만 고등법원이 심리에 들어갔다. 야당 연합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천수이볜 표와 전체 무효표 재검표를 주장했고 민진당 측은 모든 표의 재검표를 주장했다. 롄잔과 그의 러닝메이트 [[쑹추위]]는 4월 5일 단식 투쟁 중이던 대학생들을 만나 4월 10일까지 천수이볜이 적절한 대답을 내놓지 않으면 시위대를 몰고 총통부에 쳐들어가겠다고 발언했다가 단식 투쟁 중이던 여대생으로부터 "거친 발언을 삼가고 야당도 재검표 결과를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반박을 듣는 등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4월 9일 [[대만계 미국인]] 전문가 리창위 박사가 타이완에 입국하여 천수이볜을 만나고 사건 조사에 들어갔다. 야당 연합은 천수이볜의 무개차를 일반인이 운전했다는 점, 총에 맞았으면 하체로 피가 흘렀어야 정상인데 경찰이 천수이볜의 하의를 증거로 확보하지 않은 점, 천수이볜이 점퍼를 입고 찍은 엑스레이 사진에 총알만 나타나고 지퍼가 나타나지 않은 점, 천수이볜의 점퍼가 사건 이후 새것에서 헌것으로 교체된 것 같다는 점을 정리하여 리창위 박사에게 전달했다. 리창위 박사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만큼이나 어려운 사건이고 이상한 정황이 있으나 일단은 자작극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4월 10일 천수이볜을 규탄하는 대형 시위가 열려 140여명이 부상당했다. 이 시위에 스하이방을 비롯한 일부 [[삼합회]] 조직원들이 참가한 게 밝혀져 대만 경찰이 삼합회의 조직적 개입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자 삼합회는 경찰이 [[외성인]]과 [[본성인]]의 분열을 조장한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5월 19일 무죄 호소 시위를(...) 벌였다. 4월 13일에는 뤼슈롄 부총통이 [[싱가포르]] 국제관계 연구센터 및 국방 전략 싱크탱크 학자들과의 만남에서 여러 정황 증거를 볼 때 암살 대상이 천수이볜이 아니라 자신이라고 주장하며 "가장 유감스러운 건 피격당한 사실보다 진상이 밝혀지기도 전에 '자작극'이라는 의혹이 나를 두번 암살한 것"이라고 밝혔다. 5월 2일에는 거짓으로 자작극을 벌인 천수이볜과 뤼슈롄을 진짜로 암살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기업인이 체포되기도 했다. 8월 29일 리창위 박사는 총격이 천수이볜을 암살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133쪽에 달하는 조사 보고서를 뉴욕의 대만 대표부에 전달했다. 하지만 리창위 박사는 천수이볜의 자작극이라는 국민당의 주장에 대해서는 배후를 밝힐 수는 없었다며 부인했다. 2005년 1월 18일 국민당과 친민당으로 구성된 3.19 총격 사건 진상조사특별위원회는 천수이볜의 자작극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나 국민당 지도부는 이에 대한 신중한 반응을 보였고 천수이볜 총통 측은 총통부 비서장 [[쑤전창]]을 통해 비전문가들의 망상이라고 이를 묵살했다. 2005년 6월에는 무소속 입법위원 리아오가 천수이볜 저격이 자작극이라고 분석한 [[미국 중앙 정보국|CIA]] 문서를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천수이볜은 CIA 문서가 맞는지부터가 궁금하다고 대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